어릴때 무섭기만 했고 다정 다감 이라고는 전혀 무관했던 아버지 교직 생활 45년 퇴직 하시고 어머니 와 함께 해로 하시다가 3년전에 어머니 먼저 떠나 보내시고 홀로 지내고 계시다 지금은 95세이신데 중학교 졸업후 교사를 하시다가 6.25 사변때 참전 하시어 의무병으로 군 생활 하시며 숫한 고비를 넘기시고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교사를 하시며 동생들 뒷바라지와 집안을 일으키려고 고생 고생 하시며 삶을 살아 오셨다
어머니 성격이 별 나셔서 아버지가 많이 속을 썩히며 사셨다 어머니 한테 맞추어 사시다 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것도 제대로 못 하시며 늘 시간도 지켜야 하고 무었이든 어머니 결재가 떨어져야 실천 할수 있었으며 운동이라고 운동이라고 텃밭을 가꾸시며 일을 하셨는데 할수없이 따라다니시며 자그마한 밭데기에서 농사도 지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 때문에 할수없이 함께 하신다는걸 알았지만 말릴수 없었다 연세 드셔서 멀리 여행 가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미리미리 조치 하고 쉬었어야 하는데 그걸 지키지 못하고 큰 아들인 나를 속이시고 제주로 여행을 다녀오시더니 너무 무리 하셔서 그만 병이 나시고 그걸 극복 하시지 못 하시고 아버지 곁을 먼저 떠나셨다
나는 큰 아들 이지만 아버지가 초등학교때 담임을 많이 맡아 함께 하는 바람에 중학교 가면서 자유로워지며 공부를 놓코 말았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안하고 바로 객지로 나다녔다 얼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아무데나 가도 열심히하면 살수 있다고 생각 했다 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로 개업을 했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독 차지 하며 어머니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동생은 수련 의를 마치고 개업을 했고 돈도 많이 벌어 건물도 세우고 날로 번창을 했고 장남인 나는 막노동도 하고 정말 힘들게 견뎌냈으며 인생의 짠 맛을 제대로 느끼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내도 함께 힘들게 살았으며 아이들 삼남매 낳아 기르며 무던히 노력 하며 열심히 몸으로 때우며 견뎌 내며 그래도 남에 손 안 빌리고 잘 살아 왔다 사는 동안 어머니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그 와중에 조부모님 을 12년 이나 모시고 힘들게 살았다 그 어렵고 힘든 시기에 내가 공부 안하고 부모가 원 하는대로 안 됐다고 아내 까지 덩달이 미움을 받아 시집살이를 했다 나는 인천에 가서 살았는데 월세로 시작을 했다 캐비넷 하나에 비키니 옷장 하나 가지고 시작 해서 정말 열심히 살아 집도 장만 했고 동생 집 얻을때 나도 어려웠지만 보탬도 해줬다 그건 순전히 아내의 생각 이었고 맏이라는 굴례때문에 아내가 맏며느리로서 어릴때 시집 왔지만 나보다 생각이 더 깊었고 항상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그렇케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2층 집을 지어 4대가 알콩 달콩 살고 싶었는데 면년 살다보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동생은 아이를 낳았지만 하나 인데도 못 키우고 어머니가 키워준다고 집에서 함께 키워주고 있었고 한살 위인 내 새끼도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차별이 되어 지금 까지 아들 뇌리에 나쁜 추억이 남았다 아버지는 착하셔서 며느리 사랑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쩌다 며느리 칭찬 이라도 해 준 날은 어머니 한테 아버지가 혼 나시는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당시에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 것 이다
그렇케 살다가 부모님이 분가 하시고 우리는 조부모 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항상 공부 못 해서 약사를 만들고 싶었는데 네가 노력 안해서 그렇케 산다고 하시며 늘 스트레스를 주었다 작은 아들이 의사 이다 보니 온통 작은 아들 자랑만 하시고 꽃방석에 앉으실줄 알으셨나 보다 부모님 께 아내가 반찬을 만들거나 맛 있는게 있어어 가져다 드리면 이딴거 안가져와도 된다고 하시며 타박을 하시고 너는 일은 잘한다 라고 하시며 아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곤 하셨다 그렇케 힘들게 살다가 출장음식업을 하기 시작 하며 아내랑 둘이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살림을 늘리고 살으니 이제는 돈버는게 끝이 있고 띄뿌리도 끝이 있지 언제까지 벌리나 봐라 라고 하시는데 이건 부모가 자식 한테 해주는 소리가 아닌데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아내가 꾹 꾹 참으며 아이들 셋 잘 키우고 조부모도 잘 모시고 죽기 살기로 하루 두 세시간 씩 자면 열심히 해서 지금은 조그만 건물을 지어 세를 받고 살수 있도록 노력 했다는거다 건물 짓고 어머니 께 좋은 말 듣고 싶었는데 오셔서 하시는 첫마디가 넓어서 청소 하려면 쎄(혀)꽤나 빠지겠다 그게 첫 마디였다 무척 서운했다 그러시다가 병이 나셨는데 한달을 아프시다가 끝내 돌아 가셨는데 내가 곁에서 밤을 지새며 대변도 치우고 업고 병원에 다니고 병 간호를 하다가 보내 드렸다 떠나실때 아내에게 에미야 미안하다 한 마디 해주시길 바랐지만 그 마져도 안 하시고 떠나셨다
어머니 떠나 보내고 아버지 혼자 계셔서 외롭고 우울해 하시면 어쩌나 했는데 어머니 돌아 가시고 자유로워 지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시며 자기 관리를 잘 하시는데 몰라 보게 몸이 좋아 지셨다 밖에서 외식도 많이 하시고 놀러도 다니시며 해외여해도 다니신다 어머니 처럼 까다롭게 하시지 않으시니 당연히 맏며리인 아내가 반찬 해다 드리고 모시고 외식도 하고 녹용도 해다 드리고 친구분들과 함께 집에 초대해서 집에서 맛난거 드시게 하고 노래방도 하시게 해드리고 했더니 정말 좋아 하시며 자식인 내가 봐도 정말 놀라우리 많치 건강이 좋아 지셨다
농담 삼아 아버지 어머니가 안 게시니 잔소리 안하셔서 그런지 정말 좋아지셨다고 하면 느 에미가 좀 성격이 별났어 라고 하신다 ㅎㅎ 얼마나 힘드셨는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 한테 쫓겨난적도 몇번 있어서 내가 가서 해결 하곤 했던 적도 있다 집에다 모시려고 했지만 아직 까지는 괜찮타고 하시며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잘 살고 게신다 자주 찾아뵙고 반찬 다 해다 드리며 주말에 모시고 외식도 하고 그런다 보훈처에서 도우미 보내 드린다고 해도 아직 필요 없다고 하시며 손수 다 잘 하고 계시며 그라운드 골프 대회 심판 자격증도 따서 심판도 보시고 대회도 나가셔서 메달도 따 오셨다 홀로 게시지만 건강하고 밝게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스트레스가 정말 중요 하다는걸 실감 하고 있다 어제도 아내가 보약 준비해서 가져다 드리고 운동 열심히 하시려면 보약도 드셔 가며 하셔야 하고 조금만 이상하셔도 바로 바로 연락 주시고 잡수시고 싶은거 있으시면 말씀 해 달라고 하고 왔단다 아내가 정말 한 없이 고마울 뿐 이다 떠나신후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살아 게실때 마음 편하게 해드리고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데 모시고 가고 늘 신경 써야 한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언제 어떻케 될지 모르는게 노인들의 삶이다 나도 71세로 나이가 들어가지만 아버지 께서 사시는 동안 신경 안쓰시게 잘 해드려야 겠다 외롭지 않으시도록 주말에 함께 하는게 중요하다 말 상대가 있어야 외롭지 않고 편안하게 건강한 삶을 영위 하시리라 생각 하며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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